(*이 책은 직무 서적은 아니고 에세이다. 하지만 커리어 성장 관점에서 의미있는 책이고 중간중간에 PO/PM로 일할 때 헷갈리거나 어려운 문제, 개념들을 잘 짚어주고 있어서 직무 서적으로 분류해서 리뷰를 시작한다)
늘 도그냥 작가님의 책은 챙겨 읽는다. 이번에도 신간이 나왔다고 하여 읽게 되었고, 이번엔 PM/PO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에세이다 보니 작가가 이직을 하면서 무엇을 고민했고, 고민을 풀어나가기 위해 어떤 것을 서칭 했고, 그 결과 어떤 선택을 했으며, 선택 결과가 어떠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성장했느냐가 담겨있다. 말 그대로 커리어 성장기이다.
기간은 더 짧지만 나도 작가님과 비슷한 커리어를 밟고 있다. 대기업에서 기획을 시작했고 나름 오랜기간 근무를 했었기 때문에 동기들도 있고, 아는 사람들도 많았고, 고과도 잘 받았고, 무엇보다 시스템이 익숙했다. 하지만 작가님과 동일한 이유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이직이라는 모험을 했다. 그래서 PO가 되었지만 회사의 사정으로 다시 서비스기획자가 되었다. 나는 현재 업무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PO/PM이 되어야 더 레벨 업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서비스기획자로 일하는 지금 커리어가 더 확장되었고, 더 많은 성장을 하고 있기에 내가 무엇으로 불리든 상관없이 얼마든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 책도 같은 맥락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아래는 감명 깊게 읽은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에고라는 적>에서도 비슷한 이미지로 에고를 설명한다. 이 책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비대해진 자아, 즉 에고가 성장을 더 방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에고는 자기 자신을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로 믿게 하고, 누구보다 내가 더 잘해야 하고, 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 문제는 도리어 자신감만 넘칠 때가 있다. 라이언 홀리데이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하는 무언가가 굉장히 옳다고 여겨질 때, 사람의 시야는 굉장히 좁아진다. 자신의 일에 열의를 다하며 빠르게 성장한 사람이 ‘이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성장은 거기서 멈추고 일은 재미가 없어진다. (…) 그래도 당시 나의 에고가 풍선처럼 부풀다 터지기 전에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비자발적인 ‘작은 우물 탈출’이 있기에 가능했다.
내게는 ‘비전은 셀프다’라는 회사 생활에 대한 신념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가 개인의 성장을 이끌지 못하는 건 회사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는 개인의 성장에 대한 인도적 책임은 있을지 몰라도 계약된 명시적인 책임은 없다. 돈을 주고 개인의 노동력을 사들여서 회사를 운영할 뿐이다. 돈을 주는 사람이 성장까지 책임질 의무는 없다.
그러니 우물 안 일잘러에서 탈출한다는 말이 꼭 이직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거만해진 에고와 기존의 틀을 깨자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일을 쳐내는 것을 그만두자는 얘기다. 지금 일하는 방식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일을 해 보면서 이 직무의 역할과 원리, 프로세스에 대해서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회사가 책임져주지 않는 개인의 비전, 나의 셀프 비전이다.
스스로 에고가 지나쳐 조직의 순리조차 저버리고 자신이 일하는 공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면 회사를 떠나야 할 때다. 오히려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나 같은 사람이 방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 아무리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다 해도, 당신은 이미 그곳에서 성장하기가 불가능해졌다.
내가 알고 있던 성공의 기준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기를 쓰고 확장해 온 일하는 방식도 처음부터 이 일만 해 온사람에게는 벗어나야 하는 우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세상과 환경, 변화에 압도당해 잠시 정신이 나간 것뿐이었다. 내가 지금껏 쌓아 온 경험과 이커머스 도메인에서의 지식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그게 일의 방식만큼 중요한 ‘나의 가치’였다. 일의 방식의 변화를 통한 성장은 내가 지금껏 만들어 온 나의 가치에 더해지는 것이지 기존의 것이 모두 부정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일의 본질을 잘 해내고 싶다는 것은 중요한 마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정받고 싶다’나 ‘연봉을 높이고 싶다’ 혹은 ‘성공 가도를 달리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마음과 별개의 것이다. 환상을 품었던 대상에 대한 경험을 낮추고 그에 대한 본질을 해체해 나가다 보면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나는 어떤 회사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며 어떤 부분에 있어 성장하고 싶은가?” 바로 이 질문이다.
나의 성공의 기준은 나의 일을 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고, 계속 그런 방향으로 나를 단련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프로덕트를 만드는 기획자‘라는 한 문장으로 정의하고 있다. 어떤 명칭으로 불리든, 일하는 방식이 어떠하든 상관없다. 그저 내가 함께한 프로덕트가 꼭 세상을 바꾸지 않더라도, 나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지금 필요한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공감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대기업의 선호도가 다시금 높아지는 것을 관망하며, 성공의 기준을 재정의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잣대로 나와 상대방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에세이와 더불어 유저스토리와 완료조건 등의 개념 설명도 너무 좋았다. 과거 PO로 일하면서 어렵고 애매했던 부분들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얻어갈 수 있었다.
"다시 PO가 된다면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작년부터 계속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친한 지인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 주면서 내게 말했다. 환경이 바뀌어도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늘 주변에 있다고.
이제는 PO로의 막연한 직무 전환보다는 어떤 환경이 닥쳐오더라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 업의 본질을 잃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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